2016년  10



제 21대 김봉옥 충남대학교병원장 퇴임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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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이 11월 1일을 일상처럼 맞이할 수 있게
“일을 시작하면서 마무리 하고 있습니다”

커먼스먼트(commencement). 졸업식을 뜻하는 이 말은 ‘시작’이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10월 31일 제 21대 충남대학교병원장 임기를 마치는 김봉옥 원장에게 이 단어는 결코 아이러니한 표현이 아니다. 임기마감을 한 달 여 앞두고 마주한 자리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마무리 하고 있다”는 근황을 전하며 타고난 ‘에너지 유전자’를 마지막까지 유감없이 발휘하는 김봉옥 원장은 첫 부임했던 그날처럼 다시 ‘시작점’에 서 있었다. 국립대학교병원 첫 여성 병원장으로 출사표를 낸 이후 쏟아진 스포트라이트에도 “사람들의 기대감이 몸을 가볍게 했다”는 대담함도 엿봤다. 임기 이후 ‘새로운 시작’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김봉옥 원장의 지난 3년 간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원장으로서 지난 3년 간의 업무 마무리는 어떻게 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시작하는 게 마무리다’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 공들여 계획했던 일을 시작하는 것도 마무리라고 생각해요. 개인의 욕심이 아니라 일을 다시 기획하고 준비하려면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병원의 긴 역사 속에서 저는 지금 과거와 미래를 양손에 잡고 있는 자리에 있어요. 역사는 계속되는 것이지 끊어졌다가 다시 시작되는 게 아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임기 마지막 날까지도 시작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게 책임 있는 마무리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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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11. 12 취임

그렇게 ‘시작하는 일’에는 어떤 게 있을까요.

오늘만 해도 업무협약(MOU) 요청이 들어왔어요. 지난 6월에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이죠. MOU를 위해 상해에 2박3일 다녀와야 하는데 잠시 고민도 했지만 추진 결정을 내렸습니다. 기관과 기관과의 일은 더더욱 병원 역사의 흐름 속에서 당연하게 진행되어야 합니다. 간호·간병 통합서비스를 위한 새 병동이 9월 26일 문을 열고 권역응급의료센터 증축 및 리모델링 완료 기념식이 10월 5일로 예정되 있습니다. 원내 어린이집 착공식이 10월 7일로 날짜가 잡혔고, 더 큼직한 사업으로는 세종충남대학교병원 건립 첫 삽은 못 뜨지만 11월 기본설계 완료에 앞서 설계 평가를 위한 준비도 하고 있습니다.

또 본원으로 들어오는 입구에 오르막길 말고 평지로 진입할 수 있는 지하공간이 건설되는데(본관 지하 진료·교육 복합공간창조사업) 설계자를 결정하는 일까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병원이 11월 1일을 일상처럼 맞이할 수 있게 하는 게 제 목표이자 바람입니다.

의사로서의 삶, 원장으로서의 삶. 두 가지가 어떻게 달랐을지 궁금합니다.

원장이라는 역할 일을 맡기 전까지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무거운 책임감과 많은 일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돌아보면 원장 이전과 이후의 제 삶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일을 시작하면 끝장을 보는 성격이라든지, 일을 제대로 파악하고 사람들과 함께 실행할 방법을 세워 일하는 방식은 어디서나 같았죠. 제가 서 있는 곳이 병원 전체로 넓어진 것. 그게 달라진 거죠. 또 하나 변한 게 있다면 ‘희망의 실현’입니다. 전에는 ‘이렇게 하면 어떨까’ 생각만 했던 것들을 실현해볼 수 있게 된 겁니다. 큰 일이나 작은 일이 모두 같은 원칙에 따라 추진하면 된다는 자신감. 그게 제 삶의 가장 큰 변화였습니다.

경영자로서 기관의 ‘혁신’에 대한 압박도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왜 아이를 키울 때 학교도 보내고 유학도 보내잖아요. 조직도 마찬가집니다. 병원 내부에서만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는 안돼요. 사회 안에서 주변의 다른 조직, 지역사회, 정부와 어떻게 일하고 관계를 맺으면서 우리의 위치를 확고히 할 것이냐는 관점에서 봐라봤어요. 직원들에게 유관기관, 지역사회와의 소통 기회를 끊임없이 열어주면서 큰 무대 속에서 일할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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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5 .28 보건복지부 인증 의료기관 현판 제막

병원이 11월 1일을 일상처럼
맞이할 수 있게 하는 게
제 목표이자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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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0. 20 세종충남대학교병원 비전선포

생애주기별, 직무·직급별 등 여러 단계로 직원 교육에 온 힘을 쏟으셨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변화의 중심 동력이 교육이었다고 자신합니다. 조직이 속한 사회가 어떻게 변하는지 알아야 비로소 상호교류 속에서 함께 변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환자들은 정말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이에요. 병원을 찾는 고객이 끊임없이 변하고 다양한데 직원들이 뒤처지면 안 됩니다. 우리 직원들은 정말 계속 변화해야 해요. 예를 들어 병원에 음성인식 기술이 도입된다고 하면 이 기술에 대한 공통의 이해가 있어야 성공적인 적용이 가능하거든요. 이런 게 평생교육과 외부교류를 통해 이뤄지는 거죠.

앞서 ‘삶은 별반 달라진 게 없었다’고 하셨는데 하루 일과는 어떠셨는지요.

제가 원래는 올빼미에요. 주로 밤에 일하는 걸 즐기는데, 꽤나 늦잠꾸러기였죠. 그런데 임기 동안에는 7시 35분이면 출근했어요. 의사협회 화상회의가 있는 수요일에는 6시 반, 조찬모임이 잡힌 날은 더 일찍 나왔고요. 원장이라는 책임감이 눈을 뜨게 만들었고 오히려 그런 기대 때문에 제 몸이 더 가벼워졌습니다. 우리 직원들은 모르겠지만 마음먹고 6시에 퇴근하는 날은 집에 갔다가 혼자 집무실로 돌아와 일하는 날이었죠. 그래야 비서실 직원들이 퇴근하니까요. 단 하루도 집에 가서 편히 잠든 날이 없었어요. 집무실에 와서는 낮 동안의 일을 정리하고, 책도 보고, 일에 대한 구상도 하고 그렇게 새벽에 집에 들어갈 때 기분이 정말 좋았습니다. 출근 시간이 일러진 건 있지만 워낙에도 일중독자로 살아서 가족들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지요.

젊은 사람도 상상하기 힘든 체력입니다.

타고난 유전자의 힘이에요. 마음속으로 에너지유전자, 재미유전자를 타고 났다고 생각해왔는데 밤을 새도 맑은 눈으로 출근할 정도로 체력이 좋고, 우울한 사람이나 어르신들을 즐겁게 하는 에너지도 늘 샘솟듯 나오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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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2. 9 충남대학교병원 병원학교 증축 개관 2015. 5. 5 어린이날 기념 행사

중책에 따른 책임감과 스트레스는 주로 어떻게 완화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어떻게 스트레스를 풉니까’라고 주변에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고 하더군요. 스트레스 상황을 직접적으로 꺼내기보다 수다를 떨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긍정에너지를 찾았습니다. 혼자 있을 때는 주로 책을 봤어요. 좋은 책을 안 읽는 건 자기 할 탓이지만 좋은 책을 알면서 소개하지 않는 건 도리가 아닌 것 같아 직원들에게 책 선물도 많이 했죠.

힘든 일들은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당시에는 힘들었을지 모르지만 지나고나니 모두 아름답게 생각됩니다. 메르스 때도 ‘전염병 발생을 대비해서 그동안 연습하고 준비한 건데’라며 기본 원칙에 충실했고, 무사히 넘겼을 때도 ‘우리 2,600명 직원 다함께 해냈구나’ 했습니다. 일하는 방식을 바꿔나가면서 부서 이기주의를 허물고, 자신이 아닌 병원을 위해 일하는 문화가 형성되고, 각자의 힘을 같은 방향으로 쏟게 되니까 못할 일이 없더라고요. 요즘 병원계의 화두 중에 ‘환자는 두 번째다’라는 말이 있어요. 우선 직원들이 행복해야 환자도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이죠. 모두를 보듬지는 못했지만 상당히 많은 부분 직원·부서와 눈 마주치며 소통해왔습니다.
특히 인맥과 학연이 없던 제가 원장직을 수행하면서 스스로에게 주었던 숙제는 인사문제였습니다. 원칙에 따른 인사를 위해 가슴 아픈 희생도 피할 수 없었지만 조직이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꼭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후배 직원들은 희망을 봤고 더불어 실력으로, 당당하게 일하는 문화의 시작점이었습니다.

21대 원장으로서 충남대학교병원의 미래 비전에 대해 들려주세요.

소프트웨어(의료 수준)와 휴먼웨어(직원 수준)는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습니다. 하드웨어(건물 외관)도 병원의 발전을 위해 중요한 요소예요. 의생명융합연구센터가 신축되고 응급의료센터가 증축 및 리모델링을 마치면서 문화로 변의 충남대학교병원 외관이 품격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리모델링 공가가 시작된 장례식장은 지역민 수준에 맞게 정말 쾌적하게 달라질거고, 본관 복합공간창조사업에 이어 본관·소아동 스킨교체 작업까지 마치면 어느 병원 부럽지 않은 하드웨어를 선보일 예정입니다. 모든 면에서 최고를 지향하는 세종충남대학교병원까지 건립되고 나면 의료·연구·교육의 균형이 잘 잡힌 병원이 될 거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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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8. 5 메르스 상황종료 기념식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시다면 말씀해주세요.

마음 속에만 있던 꿈을 꺼내어 실현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우리 충남대학교병원 가족들과 함께 나눌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교수로서는 재충전을 하고, 의사로서는 계속 봉사하겠습니다.
더 먼 미래에는 여러 곳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강의를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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