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2

따뜻한 마음2

글+사진 봄 편집실

“아무리 큰 병이라도 사람의 의지는
못 이기는 법입니다”

얼마 전 충남대학교병원에 편지 한 통이 전달됐다. “선생님들의 배려는 평생 동안 잊지 못할 것입니다.” 올해 2월 유방암 진단을 받은 안승서 씨는 지난 9월 17일 마지막 항암치료를 끝내고 회복기에 접어들었다. 지금 생각해도 당시 기억은 아찔하지만, ‘남을 위해서라도 내가 먼저 건강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을 배웠다는 안승서 대표. 이제는 병원에서 만난 이들에게 힘이 되고 싶다 말하는(사)대전장애인인권포럼 안승서 대표를 직접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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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건강한 삶 위해 충남대학교병원을 만나다

안승서 대표는 3살 때 소아마비를 앓은 뒤 올해로 51년 째 휠체어 생활을 하고 있다. 긍정적이고 밝은 성격 덕분인지 지금까지 ‘장애인’이란 틀에 얽매이지 않고, 남을 돕는 데 많은 시간을 쏟으며 살아왔다. 7년 전 문을 연 (사)대전장애인인권포럼과 보문장애인자립생활센터도 그중 하나다. ‘장애인의 권익은 장애인이 가장 잘 알고 있다’는 마음으로부터 시작한 일. 충남대학교병원과의 인연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됐다. “충남대학교병원 보조기구센터엔 우리 장애인들에게 필요한 보조기구가 잘 갖춰져 있습니다. 하지만 초기엔 많은 사회단체들이 그 존재를 잘 알지 못했어요. 홍보가 많이 부족한 편이었죠. 일찍이 보조기구센터의 존재와 그 중요성을 알았던 저희 센터는 병원과 손을 잡고 홍보에 앞장섰습니다.” 이후 안승서 대표는 재활의학과와 MOU를 맺어 장애인, 재활의학과 관련된 행사에 꾸준히 참여해 장애인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최선을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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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승서 대표가 김봉옥 원장에게 보낸 편지 전문

환자들에게 희망을, 편지에 마음을 담다

이런 그에게 올해 초 뜻하지 않은 소식이 들려왔다. 유방암 1기라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었다. “정말 마음이 복잡했죠. 나보다 남을 위해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하던 내게 이런 고난이 찾아오다니, 억울한 마음도 없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땐 제 건강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슬퍼할 겨를도 없었죠.” 사실 진단받기 얼마 전부터 가슴에 잡히는 덩어리 때문에 불편함을 느낀 적도 많았지만, 당시 안승서 대표에겐 충남대학교병원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는 어머니 간호가 먼저였다. 몇 달 뒤 어머니 장례를 치르고 삼우제까지 잘 마무리 한 그는 이제야 자신의 몸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집에 돌아오니 온몸에 기운이 쭉 빠지더라고요. 영양제를 맞아볼까 싶어 병원을 찾았는데 문득 전부터 신경 쓰이던 가슴의 덩어리가 생각나 검사를 받아 봤습니다.” 치료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2월 26일 초음파검사, 조직검사를 받고 3월 6일 결과가 나오자마자 수술 날짜를 잡았다. “완전히 뿌리를 뽑기 위해 임파선까지 제거하기로 했어요. 큰 수술을 앞두고 걱정이 정말 많았습니다. 늘 곁을 지켜주던 어머니도 안계시니까 외롭기도 했죠. 이 공허함을 채워준 건 의료진들의 작은 배려였습니다. 중앙주사실에선 농담이 끊이지 않았고, 이진선 교수님은 제 혹이 예쁘게 생겼다고 말씀하시기도 했는걸요.(웃음)” 긍정의 힘은 대단했다.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이후의 치료 역시 꾸준히 받았다. 3주에 한번 씩 맞는 4번의 항암주사, 1주일에 한번 씩 받는 12번의 예방치료를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았던 그는 의료진들에게 ‘걱정할 필요가 없는 환자’로 통했다. 이제 막 회복기에 접어든 안승서 대표는 제일 먼저 펜을 들었다. 의료진들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그가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병원에 입원하면서, 또 통원치료를 받으면서 희망을 잃은 환자들을 정말 많이 봤어요. 건강을 되찾게 되자 그들에게 힘이 되고 싶단 생각이 들어 펜을 들었습니다. 장애인인 저도 이겨냈는데, 누군들 다시 못 일어나겠습니까? 제가 할 수 있는 건 비장애인이 더 잘 할 수 있어요. 아무리 큰 병이라도 사람의 의지는 못 이기는 법입니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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