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지기 테마에세이

10월의 의료_노인의 날 기념

나의 문제를 누가 결정하나요?
의사결정능력

정신건강의학과 김정란 교수
(대전지역노인보건의료센터장)

의사결정능력은 어떤 상황에서 자신에게 가장 적절한 것을 선택하는 능력을 말한다. 우리 사회가 고령화되면서 노년기에중대한 의사결정을 해야하는 상황이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재산 처리와 관련된 법적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에는 노인의 의사결정능력이 쟁점이 된다. 의사결정 과정에는 선택 권한에 대한 의사소통, 적절한 정보의 이해, 선택 후 상황의 예측, 합리적 추론이 필요하다. 그러나 의사결정 상황에서는 사회문화적 요인, 가족의 관계, 의사결정에 손상을 일으키는 질환(치매)의 정도 등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에 대한 평가는 신중해야 한다.

사진

| 사례 1 |
한 노년기 여성이 20년 전 사별하고 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계셨는데, 아파트 때문에 딸과 사이가 멀어지게 되었다. 어머니는 죽을 때까지 아파트를 소유하고 싶었고 딸은 돈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 어르신은 “내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 맞는지, 자식이 원하는 것을 해줘야 하는지 답을 찾지 못해 병이 날 지경”이라고 하셨다.

의사결정에 중요한 가치 판단

이런 재산 처리에 대한 이해갈등은 노인정신과 진료에서 자주 접하는 문제이다. 사실 병원에서는 법적 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가족 갈등으로 인한 심리적 상태(우울, 불안, 불면)에 대한 진료를 하면서 간접적으로 사연을 알게 된다. 사례 1의 어르신은 자신이 원하는 바를 잘 알고 있고 자신의 결정으로 인한 결과도 예상을 하고 있다. 다만 어느 쪽에 가치를 둘 것인가가 쟁점이기 때문에 가족들에 의해서 중재되는 경우가 많다.

| 사례 2 |
두 명의 아들을 둔 노년기 남성은 사별 후 혼자 살다가 수년 전에 치매 진단을 받았고 큰아들 내외의 돌봄을 받다가 2년 전에 돌아가셨다. 장례식 후 정리를 하던 중에 둘째 아들이 어르신이 돌아가시기 몇 개월 전에 부동산 등을 본인 명의로 이전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두 아들은 법적 다툼을 하게 되었고 법원은 의사에게 ‘명의 이전 당시의 인지기능 상태, 특히 의사결정 능력’에 대하여 자문하였다.

치매 단계에 따라 달라지는 의사결정능력

이런 사례들은 최근 증가하는 추세이다. 치매와 같은 인지기능이 저하되는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이 재산 처리 행위를 했을 때 올바른 판단으로 한 것인지, 다른 사람이 의도한 대로 ‘도장’이나 ‘서명’만 한 것인지에 대한 의학적 판단을 전문가(의사)에게 묻는 것이다. 위의 두 사례는 ‘의사결정능력’과 관련된 것이다. 재산 처리를 할 때 행위자가 그 내용을 잘 이해하고 그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의사결정능력’이라고 한다. 법률에서는 ‘행위 능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편이다.

노인은 의사결정능력이 있는가?

당연히 의사결정능력이 있다. 자신에게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는 능력은 나이와 무관한 문제이다. 또한 사회 활동을 어느 정도 해 오신 분들은 정보 습득 및 이해 능력이 충분하고 예측 능력과 판단력이 있다. 그러나 일부의 경우는 의사결정을 위해 정황을 파악할 정보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들어야 할 때도 있다. 사회 경험이 적은 분이나 교육 기회가 적은 분들은 혼자서 해석하기 어려울 때가 있는데, 이때는 대상자의 의사결정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즉, 법적 용어와 같이 어려운 단어는 쉬운 말로 풀어야 하고 복잡해 보이는 여러 가지 조건들이 의미하는 바를 누군가가 설명해 주어야 한다. 이 경우 도움을 주는 사람은 가족일 수도 있고, 법률 대리인일 수도 있다. 사례 1의 경우는 가족의 이해관계와 어르신의 욕구가 충돌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답은 없으나 의사는 가족 관계를 중심에 두고 고민하도록 조언한다.

치매 상태는 의사결정능력이 없는가?

치매는 어떤 원인에 의해 뇌의 퇴행성 변화를 일으켜 기억력, 언어능력, 집중력, 추리력, 사회인지력, 시공간 능력 등의 인지기능이 손상되는 상태이다. 인지기능이 손상되므로 자발적으로(자율성) 결정하는 능력에 결함이 생길 수 있다. 그러나 치매가 있는 모든 사람이 완전히 항상 의사결정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경도에서 중등도 단계의 치매가 있는 사람도 상황을 평가하고 이해하고 자신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추론할 수 있다. 사례 2처럼 법적 쟁점이 될 때는 의사결정 시점에서 그 사람의 행위능력이 있는지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까지는 치매가 있는 사람의 의사결정능력을 평가할 수 있는 단일한 도구는 없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치매 선별도구, 치매의 중증도 평가 도구, 신경심리검사, 그리고 일상생활 능력을 포함하여 상세하게 평가한다. 또한 중증도에 따라 의사결정능력의 정도를 독립적 결정이 가능한 정도, 간헐적으로 결여된 정도, 지속적으로 결여된 정도 등으로 나누기도 한다. 실제 임상에서는 치매의 원인, 치매 외의 신체 질환, 정서적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어떤 시점의 의사결정능력을 판단하는 것은 복잡하다.

의사결정능력이 없는 경우 누가 결정하는가?

장애, 질병, 노령 등으로 사무처리 능력에 도움이 필요한 성인에게 가정법원이 결정 또는 후견계약으로 선임된 후견인이 재산관리뿐만 아니라 신상보호와 같은 폭넓은 보호와 지원을 제공하기 위한 제도가 ‘성년후견제’이다. 이 제도는 우리의 자기결정권을 보호하는 제도이다. 현재 성년후견제는 발달장애, 중증 정신장애, 뇌병변 및 치매와 같은 장애에서 적용되고 있으며 그 종류로 성년후견, 한정후견, 특정후견, 그리고 임의후견 등이 있다. 사진

사진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