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의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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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독 철학자 한병철 교수의 저서 《아름다움의 구원》에는 이런 글이 나온다. “날카로운 모서리도 미를 훼손한다. 모든 날카로운 모서리는 실제로 미의 관념과 지극히 모순되기 때문이다. 나는 자연의 대상들 가운데 모서리져 있으면서도 아름다운 것을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다.” IBS 기초과학연구원의 ‘Art in Science’ 전시회에서 발견한, 모서리지지 않은 아름다움의 구원이라고 할까. 생명과 물질의 세계를 탐구하는 IBS 과학자들은 첨단 연구장비로 자연의 미시세계를 관찰하며 상상을 초월하는 아름다움의 순간을 포착하고 그것을 시민들과 공유하고 싶어 특별한 전시회를 열었다. 이번이 다섯 번째로 과학과 예술의 융합을 통해 기초과학이 창조하는 경이로운 예술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았을 때 어떤 마음이 들던가. 동심원처럼 마음이 활짝 열리지 않던가. 그 순간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지 않던가. 아름다움을 향한 열린 성찰은 곧 공유와 융합으로 거듭나는 사랑의 구원인 셈이다.

전 시 명IBS Art in Science ― 과학자의 눈 : 관찰과 상상

전시장소|IBS 과학문화센터 1층 전시관

전시기간|2019. 12. 10 ~ 2020. 4. 29.

사진제공|IBS 기초과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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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 위의 모닥불(Bonfire in the Brain)

뇌의 신비를 밝히려는 ‘뇌과학’이 언젠가부터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호모 사피엔스의 후손인 우리가 지구의 지배자가 된 힘이 뇌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호모 사피엔스 진화의 힘은 우선 인지혁명에서 나왔고, 그것은 우연히 일어난 유전자 돌연변이가 뇌를 바꿨기 때문이라고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리리는 설명한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뇌’ 그 자체에 관심을 가졌을 뿐, 뇌를 감싸고 있는 막인 ‘뇌막’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과연 이 얇은 막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뇌막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뇌와 척수를 보호하는 것’이다. 최근 연구를 통해 뇌 노폐물이 뇌막의 대식세포들에 의해 청소되고, 뇌막 림프관을 통해 뇌 밖으로 배출된다는 것이 밝혀졌다. 뇌 노폐물이 배출되지 않고 쌓일 경우, 뇌 신경세포 사이의 정보전달의 흐름을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알츠하이머병의 원인이 되는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IBS 혈관연구단은 쥐의 뇌막을 고해상도로 관찰하기 위해, 뇌막 림프관의 구조를 유지한 상태에서 형광염색을 했다. 혈관은 ‘초록색’으로, 뇌막 림프관과 대식세포는 ‘붉은색’으로 표현했다. 뇌는 머리뼈와 뇌막에 의해 보호되어 안정적인 구조를 유지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뇌막에서는 역동적인 일들이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이 작품에서 보듯이 뇌막 림프관은 불꽃처럼 힘차고 활발하게 뻗어나가고 있으며, 대식세포들은 혈관의 파수꾼이라도 된 것 처럼 그 주위를 움직이며 병원균의 침입을 감시하고 있다. 그래서 ‘활활 타오르고 있는 모닥불’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걸까? 인류 진화의 비밀이 담긴 우리 뇌를 건강하게 지키기 위해 지금 뇌막에서 일어나고 있는 신비로운 일들을 액션페인팅처럼 표현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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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니소스의 폐(Lung of Dionysus)

‘디오니소스적’이란 예술용어가 있다. 그리스 비극의 본질을 예리하게 통찰하며 이 용어를 사용한 니체에 의하면 디오니소스적이란 몰아적(沒我的) 도취이고 열광이며 생성의 근원에 있는 깊은 에너지를 의미한다. 바쿠스 또는 바카스라고도 불리는 ‘디오니소스’는 고대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포도나무와 포도주의 신이자 풍요·다산·축제의 신으로 알려져 있다. 포도는 하나의 가지에서 주렁주렁 열매를 맺기에 예부터 ‘생명과 풍요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필수적인 생명활동 중 하나인 ‘호흡’에 관여하는 우리 몸의 기관이 바로 폐이다. 폐는 ‘포도송이를 닮은 주머니 모양의 구조’인 폐포로 구성되어 있다. 폐포 세포와 혈관내피 세포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교환이 호흡의 핵심이다. 폐에서 혈관이 만들어질 때 주변세포와의 상호작용을 알아보기 위해 수정 후 12일된 정상 생쥐 배아의 폐에서 혈관에만 특이적으로 존재하는 CD31 단백질을 염색한 후, 염색된 혈관을 공초점 형광현미경으로 촬영하였다. 그 후 폐포를 과장되게 재구성하여 풍성한 포도송이 이미지를 얻고, 축제의 불빛으로 주로 사용되는 4종류의 네온색상을 입혀 축제의 신인 디오니소스를 상징하도록 연출한 팝아트적인 작품이다. 잠시 양쪽 옆구리에 손을 대고 깊은 호흡을 해보자. 폐의 부드러운 역동이 느껴지는가. 살아 있음은 그 자체만으로도 디오니소스적인 축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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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It's Okay)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 했던가. 우리는 삶에서 크고 작은 실패를 거듭한다. 그 실패를 딛고 배우며 앞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때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오히려 긴 시간 쌓인 실패의 트라우마만이 우리를 두렵게 한다. 그렇지만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벼랑 끝에 다다랐다고 느꼈을 때,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일어난다고 믿어보자. 발을 대고 설 수 있는 땅이 생기거나, 또는 날 수 있는 날개가 생기거나. 초현실주의적인 작품 속의 신비한 파란색은 ‘시상망상핵(thalamic reticular nucleus)’이라 불리는 뇌의 신경세포다. 시상망상핵은 기존에 주의집중, 체감각신호 처리 등에 관여한다고 알려진 지역인데, 최근 들어 공포기억의 소멸에도 깊이 관여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이 작품에서 촬영된 시상망상핵 신경세포(파란색) 중 일부(빨간색)는 실 모양의 축색돌기를 공포기억센터에 뻗어 두려운 기억을 억제한다. 두려운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 신경세포들은 더욱 활성화되고,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뇌 수준에서 제공해준다. 그야말로 생명의 동아줄이요, 아름다움의 구원이 아닌가! 때로는 거듭된 실패로 불안과 두려움이 커져 새로운 도전을 자꾸 주저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면 잠시 숨을 돌리고, 나의 뇌 안에서 보내오는 작은 응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 “괜찮아.” 그래, 주머니 속 용기를 꺼내보고, 오늘도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거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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