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편지
발전후원회로
보내온
따뜻한 기고문
글_서연수 카이스트 교수
글을 시작하며
충남대학교병원 의료진의 뛰어난 의술과 환자에 대한 헌신에 감사를 표하고, 충남대학교병원이 대전·충남의 일등 병원이라는 자부심을 느끼며 이 글을 씁니다. 저를 치료해주신 분들의 이름을 밝혀 감사를 표하는 것이 도리이나, 제가 접하지 못한 다른 훌륭한 의료진이 많이 계시기도 하고, 또한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일 수 있으므로 이름을 일일이 밝히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깊은 양해를 구합니다.
충남대학교병원과의 첫 인연
나이가 드니 예전과 같지 않다. 불혹의 나이를 지나 지천명을 목전에 둔 14년 전 스키를 타다 사고가 났다. 쓰러져 있는 분을 피하느라 미끄러져 넘어지면서 왼쪽 무릎에 심각한 복합 골절을 입었다. 예전 같으면 충분히 피할 수 있었지만, 나이 탓인지 근력이 약해져 균형을 잡을 수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스키가 탈착되지 않는 불운이 겹쳐 골절이 생각 외로 커졌다. 이 사고로 충남대학교병원과 첫 인연을 맺게 되었다. 정형외과의 한 교수님을 찾아간 것이다. 어릴적, "인생에서 가장 피해야 할 곳이 있다면 병원이다"라는 어르신 말씀이 생각이 났다. 컴퓨터단층촬영과 자기공명영상촬영으로 무릎 골절 상태를 확인한 결과, 커다란 금속판과 일곱 개 금속핀으로 조각난 뼈를 고정해야할 정도로 심각한 골절이었다. 교수님의 노련한 솜씨로 심하게 망가진 무릎이 되살아난 것이다.
꽃가루 날리는 봄이면 어김없이 비염 등 알레르기성 호흡기 질환에 자주 시달려 왔다. 나이 50 중반을 넘기자 해마다 더 심해져 갔다. 6년 전 대구로 파견되어 겸직 근무를 하면서, 호흡기 질환 치료를 위해 그 지역의 유수한 대학병원 외래를 거의 매달 찾았지만, 전혀 차도가 없었다. 겸직을 마치고 대전으로 복귀하자마자 또다시 충남대학교병원을 찾았다. 두 번째 인연이었다. 이번엔 호흡기내과 교수님을 찾아갔다. 첫 진료에서 호흡 기능검사를 통해 천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교수님의 처방약과 흡입기 사용만으로 호흡기 질환에서 해방된 것이다. 이 일로 충남대학교병원 의료진에 많은 신뢰가 쌓이게 되었다.
인생에서의 최대 고비: 혈액암 진단
내 나이 이순이 되자 인생 최대 고비를 맞이하게 되었다. 혈액검사에서 이상 소견이 나타난 것이다. 적혈구 수치가 급격히 낮아진 것이다. 또다시 충남대학교병원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 이번엔 혈액종양내과 교수님을 만났다. 빈혈 관련된 다양한 검사까지 마쳤지만 낮아진 적혈구 수치의 원인을 밝히지 못했다. 내출혈 가능성도 검사하였지만, 특이 소견은 없었다. 어느 날 밤늦게 입안의 볼을 깨문 적이 있는데, 평소보다 조금 더 큰 상처가 났는지 피가 많이 나왔다. 잠이 들었다가 중간에 깨어나 보니 입안이 끈적이고 피가 흘러 베개에 묻어 있었다. 입안에 무언가 느껴져 뱉어 보니 커다란 피떡이었다. 정상적인 지혈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진행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침 은퇴하신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의 한 교수님을 알고 지낸 터라 이 증상으로 의논을 드리니 서울대학교병원의 한 제자를 찾아보라고 조언해 주셨다. 이 분의 권고로 충남대학교병원과 서울대학교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받기로 결정하였다. 확진을 위하여 골수생검을 하였다. 그 결과 골수에 문제가 생겨 적혈구, 혈소판, 백혈구 등의 혈액 세포가 정상적으로 생성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진단명은 골수형성이상증후군, 골수에 암세포가 증식하여 조혈 기능을 방해하는 혈액암이다. 병명의 확진에 따라서 현재도 저를 치료하고 계신 교수님으로 주치의가 바뀌게 되었다. 정확하고 빠르게 진료해 주신 혈액종양내과 두 분의 교수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
충남대학교병원 혈액종양내과 교수님과 서울대학교병원 교수님은 다행이 학회 활동을 하시면서 잘 아시는 분들이라 긴밀한 협진이 가능하였다. 이로 인해 두 병원을 오가며 치료받기로 한 결심이 더욱 굳어졌다.
골수형성이상증후군은 초기에는 치료 없이 경과 관찰만 하였다. 치료 자체가 커다란 위험이 따르는 병이기 때문이다. 이 병은 적혈구 감소증인 빈혈로 인한 피로감, 혈소판 감소로 인한 잦은 출혈, 백혈구 감소로 인한 여러 감염성 질환에 시달리게 된다. 경과 관찰 중 몇 달이 되지 않아, 열이 나기 시작하며 목 주변 부위에서 단단한 결절이 만져지기 시작하였다. 열이 나자마자 가까운 병원을 방문하여 해열제와 경구용 항생제로 치료하였다. 열은 내렸지만, 상처 부위는 악화되는 것 같았다. 골수형성이상증후군이라는 기저질환이 있어 즉시 충남대학교병원을 방문하여 이비인후과 교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며칠 사이에 감염부위가 더 커지고 더 깊게 곪아 갔다. 혈액종양내과, 이비인후과, 감염내과 교수님께서 서로 의논한 결과, 저를 입원시켜 정맥주사 항생제로 치료하기로 결정하였다. 몸의 면역 시스템이 제대로 기능을 하지 않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원인 불명의 감염이 시작된 것이다. 보통 사람이면 간단히 치료되는 감염증도 2주간의 입원과 퇴원 후 4주간의 투약으로 가까스로 치료할 수 있었다. 이 사이에 피부 질환이 생겨 피부과 교수님의 진료를 받게 되었다.
목 부위 감염이 치료된 지 몇 개월도 지나서 않아 통증이 심한 중이염이 생겼다. 이번에도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이 병도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것이라서 골수형성이상증후군 때문에 비롯된 것으로 생각된다. 통증이 빠른 속도로 심해지고 재발까지 있었지만 앞서 목 감염을 치료하신 분과는 다른 두 교수님의 도움으로 완치가 되었다.
급성골수성백혈병으로의 발병과 골수이식
혈액종양내과 교수님과 주기적 진찰을 받던 중, 말초 혈액에서 미성숙 백혈구가 발견되기 시작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본격적인 치료를 할 시기가 왔음을 알리는 신호인 것이다. 다행이 바로 다음 주 서울대학교병원 검사가 예약되어 있었다. 이는 내 게으름 탓이기도 하다. 보통은 전화해서 진료 일정을 미루어 간격을 조정하였지만, 이번엔 내 게으름 탓에 하지 않았다. 서울대학교병원에서 골수검사를 실시한 결과 골수가 암세포가 20% 이상 넘어, 병명도 급성골수성백혈병으로 바뀌었다. 강한 항암에 이어 동종골수이식이 유일한 치료법으로 알려져 있다. 골수에 암세포가 20% 넘어야 치료를 시도한다는 것이 세계적으로 확립된 방법이었다. 치료로 인한 이점과 치료에 따르는 위험 사이에 환자를 위한 최선의 의료적인 타협이라고 생각된다. 난 절묘하게 경계 수치인 21.4%였다. 경계에서 벗어나 수치가 높아질수록 치료가 힘들어지는 것은 과학적으로 명확한 것 같았다. 암세포를 최대한 죽여야 성공할 확률이 높아지는 항암치료법은 아무래도 치료 시작 시점에 존재하는 암세포가 적을수록 유리할 것은 명확하다. 충남대학교병원과 서울대학교병원을 오가는 협진 덕분에 가장 적당한 시기에 항암과 골수이식의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골수이식 후 보존적 치료
항암과 골수이식 치료법은 병원에 따라 비교적 차이가 없는 표준화가 되어 있다. 이 치료 후에는 환자의 연령, 건강 상태, 기저질환에 따른 적절한 치료가 환자의 추후 생존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서울대학교병원에서 퇴원 직후, 항암과 골수이식의 부작용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지리적인 이유로 서울대학교병원에 매번 간다는 것은 불가능하였고, 입원은 더구나 생각할 수도 없었다. 입원실은 더 중한 환자를 위한 것이니까. 이런 환경에서 충남대학교병원의 뛰어난 보존적 치료 덕을 톡톡히 보았다. 탈진과 탈수로 인해 긴급 상황이 자주 발생했고 충남대학교병원에서 모두 해결이 되었다.
충남대학교병원에 있지만
다른 병원에 없는 최고의 서비스
치료 중인 암 환자로 가장 인상 깊었고, 커다란 도움이 된 것은 충남대학교병원에서 시행 중인 가정간호 서비스가 아닐까 한다. 매일 병원에 가기도 힘들고 입원하기도 애매한 경우에 해당하는 내가 그렇다. 먹지도 못하는 나에게 수액 및 영양제 투여는 최소한의 체력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것이었다. 대전의 다른 병원에 없는 것이 충남대학교병원에 있었다. 바로 가정간호서비스. 역시 충남대학교병원은 나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가정간호서비스가 암 환자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 이 서비스를 받은 나는 어느새 가정간호서비스의 가장 강력한 옹호자가 되었다. 충남대학교병원 병원장님께 이 서비스의 확대를 부탁드린다. 이 서비스의 확대는 '충남대학교병원이 대전충남지역에서 최고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살아 있는 홍보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암 생존자로서 합병증 치료
충남대학교병원의 뛰어난 보존적 치료와 가정간호서비스에 힘입어 건강이 많이 회복되었지만 암 치료와 관련하여 다량의 스테로이드 투여로 인해 당뇨 전 단계가 초기 당뇨병으로 발전하였고, 항암제를 포함한 강한 약물치료로 인해 신장 기능의 저하가 생겼다. 이 두 질환은 서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다른 환자와 달리 주의 깊게 관리할 필요가 생겼다. 당뇨병은 내분비대사내과, 그리고 신장병은 신장내과 교수님의 신세를 지고 있다. 지금까지 당뇨병과 신장은 더 악화 되지 않고 잘 관리되고 있다. 이식편대숙주 반응으로 눈에 문제가 생겼지만, 안과 교수님의 진료를 통해 증상이 많이 완화되어 편해졌다. 모두 믿음직한 분이다.
충남대학교 병원 아직도 나에게 실력을 충분히 과시하지 않았는지 또 다른 질환이 생겨 치료를 받아야 할 일이 생겼다. 작년 초부터 안면마비로 신경과 교수님의 치료를 받아 오고 있다. 임과의 관련성은 알 수 없다. 신경 검사 결과 왼쪽 안면 신경 신호가 거의 없어 회복이 부분적이거나 매우 느릴 것이라는 말씀을 하셨다. 첫 진료 중 환자의 발을 주저 없이 맨손으로 만지는 모습에서 매우 환자 친화적인 의사라는 인상을 받았다. 안면마비가 있고 얼마 되지 않아 또 다른 생소한 질환을 겪었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 왼쪽 귀가 완전히 들리지 않는 돌발성 난청이 생겨난 것이다. 이비인후과 교수님의 치료로 많이 회복되어 일상생활에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현재는 혈액종양내과와 신장내과에서 3-6개월마다 진료 예약이 되어 있다. 혈액암이 워난 위중한 병이다 보니 그동안 소홀히 한 치과 치료도 신세를 졌다. 약간의 과장을 보태면 충남대학교병원의 소아과와 산부인과를 제외한 모든 진료과를 거쳐 치료받고 신세를 진 느낌이 든다.
글을 끝내며
어르신들 말씀처럼 병원과의 인연은 결코 좋지 않지만 '피할 수 없다면 충남대학교병원이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 사태가 끝나면 혈액암 환우 및 가족 상담 등의 자원봉사자 역할을 하고 싶다. 치료를 잘 받아 완치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충남대학교병원의 의사 선생님, 간호사 선생님, 그리고 이들의 손길이 간절히 필요한 환자분들께도 특별한 방식의 축복이 있기를 기원하며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