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02

따뜻한 마음

충남대학교병원이 지원한 환자 사례를 따뜻한 동화로 만나봅니다.

더는 혼자가 아니야

해질 녘 병원 창 밖에는 눈이 내립니다. 복도 끝 창가에 서 있는 정석씨는 눈 오는 풍경 대신 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간경화로 복수가 찬 배는 곧 터질 듯 한 풍선처럼 부풀어 있습니다. 누렇게 변해버린 안색과 퍼석한 머리칼, 환자복을 입은 정석씨는 어둑한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낯설기만 합니다. 정석씨는 오늘처럼 눈 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열 살쯤이었을까요. 펄펄 눈이 내리던 어느 날, 친구들과 신나게 눈싸움을 하던 정석씨는 미끄러운 길에 넘어져 그만 바지가 찢어져버렸습니다. “앗 따가워!” 바지 위로 새빨간 피가 배어 나왔습니다. 어머니는 그런 정석씨를 보곤 바지를 찢어먹었다며 다른 날처럼 화를 냈습니다. 방문 틈으로 자신을 보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여동생에게 정석씨는 어서 문을 닫으라고 손짓을 보냈습니다. 그런 정석씨는 ‘조금 더 자라면 이 집에서 꼭 도망치리라’고 다짐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던 날, 정석씨는 정말로 집을 나왔습니다. 그리곤 일용직 노동자로 공사장을 전전하며 근근이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그렇게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생활 속에서도 종종 여동생을 만나 지폐 몇 장을 쥐어주곤 했습니다. 집 밖에서 그 많은 겨울을 보내는 동안, 정석씨는 눈 내리는 날이면 어김없이 불쌍한 여동생과 가혹했던 어머니를 떠올렸습니다. 그날도 눈이 아주 많이 왔습니다. 멍 하니 생각에 잠겨 길을 건너던 정석씨가 자동차 경적 소리에 고개를 돌렸을 때는 이미 희뿌연 빛이 정석씨 코앞에 다가온 후였습니다. 끔찍한 교통사고였습니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병원이었고, 그 사고로 정석씨는 지체장애 5급 판정을 받았습니다.

사진

“내가 뭘 잘못했다고! 대체 세상이 나한테 왜 이러는거야!”

이후 정석씨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잊기 위해 매일 술을 마셨습니다.
매일 밤 술을 먹고 토악질을 해야만 잠에 들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인가부터 정석씨의 배가 점점 불러오기 시작했습니다. 병원에 갔더니 벌써 간경화가 많이 진행된 상태라고 했습니다. 진료실 앞 의자에 망연자실 앉아있던 정석씨에게 여동생이 다가왔습니다.

“오빠는 혼자가 아니야. 오빠를 도와주겠다는 사람들이 있어.
나도 이젠 오빠를 혼자 두지 않을거야. 조금만 더 힘내자 응?”

동생은 충남대학교병원 ‘사랑회’에서 치료비를 지원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늘 혼자서 시린 세상을 견뎌온 정석씨에게 누군가 처음 내민 따뜻한 손길이었습니다. 정석씨 눈에 뜨거운 눈물이 고였습니다.

멍하니 눈 오는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정석씨에게 여동생이 다가와 어깨에 웃옷을 걸쳐줍니다. “추운데 여기서 뭐해? 들어가자.” 정석씨가 병원에 입원한 이후 마치 엄마처럼 구는 여동생입니다. 마냥 어린 애 같았는데 어느덧 정석씨가 집을 나오던 무렵의 어머니만큼 나이를 먹었습니다. 날이 춥다며 종종걸음으로 앞서 걷는 동생의 뒤를 따라 가면서 정석씨는 참 오랜만에 미소를 지어봅니다.



이 글은 충남대학교병원 ‘사랑회’가 지원한 손○○님의 사연을 동화로 재구성한 것으로 사실과는 일부 다를 수 있습니다. 정신분열병을 앓고 있는 어머니에게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못했던 손○○님은 중학교를 졸업하고 집을 나와 일용직 노동을 하며 홀로 생활해 왔습니다. 6년 전 교통사고로 지체장애 5급 판정을 받고 노동도 불가능해지면서 술로 지내다 간경화로 상태가 위중한 가운데, 환자의 여동생도 간병을 위해 일을 그만두면서 경제적 어려움이 있어 ‘사랑회’를 통해 100만원 치료비를 지원했습니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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