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03

함께 듣는 이야기

3월호 테마인 ‘위·장’의 의미를 짚어봅니다. | 편집실 | 감수 외과 설지영 교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며
에너지원을 만들다

하루 24시간 중 우리는 약 8.1시간(주 5일 기준, 2014년 고용노동부) 정도를 투자해 일을 한다.
남은 시간에 취미·사교활동, 운동, 식사 등을 하고 나면 다시 활동을 하기 위해 휴식을 취하거나 잠을 자게 된다. 우리 몸이 쉬는 이때에도, 하루 24시간이 모자라도록 끊임없이 일을 하는 곳이 몸 속 소화기관이다. 잘게 부서진 음식물이 식도를 지나면 마치 스위치를 켠 듯 위, 소장, 대장은 각자의 일거리를 찾아 완벽히 소화해낸다.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에너지 전달을 극대화하는 위·장 이야기를 들어보자.

아침식사가 모두 소화되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입에서 한번 부숴진 음식물이 식도를 지나 위로 들어가면, 위는 위액을 분비해 뒤섞고 더 작게 만든다. 위액 속 펩신이 단백질을 분해하고 염산은 살균작용을 한다. 짧게는 40분 길게는 4시간 동안 위에 머물며 음식물은 거의 죽이 된 상태로 소장을 향한다. 소장은 위와 대장 사이에 있는 길고 좁은 관이다. 대장보다 굵지는 않지만 대장 길이의 3배(약 7m)나 된다. 얼핏 뱃속에 아무렇게나 포개져 있는 것처럼 보여도 소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해낸다. 안쪽 점막이 주름으로 이뤄져 있는데다 무수히 많은 매우 작은 돌기들(융털)이 음식물과 닿는 면적을 최대한으로 넓게 해, 더 많이 더 빠르게 영양소를 흡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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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융털을 펼친 넓이는 200~250㎡로, 우리 모두 뱃속에 테니스 코트장 하나씩을 품고 있는 셈이다. 음식물이 소장을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6시간 정도다. 대부분의 영양소를 소장이 흡수하고 나면 남은 찌꺼기가 대장으로 내려간다. 대장은 주로 물을 흡수하는데, 음식물 찌꺼기가 점점 고형화 되면서 대변으로 굳어지는 것이다. 대장은 수축과 이완을 주기적으로 하면서 연동운동으로 대변을 직장으로 보낸다. 대장에 음식이 머무는 시간은 가장 긴 12~20시간으로, 배안(복강) 대부분이 대장으로 차 있어 흔히 말하는 똥배를 만든다. 결국 아침 식사가 대장을 통과하기까지 길게는 30시간이 걸린다.

‘움직임’의 즐거움

다시 노동 시간으로 돌아가 보자. 위·장은 하루 8시간 이상을 일하는 우리보다 더 오랜 시간 운동하는 ‘부지런한’ 소화기관이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건강한 편은 아니다. 우리나라 주요 암종 발생률에서 갑상선암을 제외하고 가장 암이 많이 발생하는 부위가 바로 위(13.8%), 대장(12.9%, 2012년 국가암등록통계)이다.

현대인의 노동은 몸보다는 손이나 머리를 사용하는 일이 더 많다. 이렇게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우리 소화기관이 일하는 속도는 더욱 더뎌진다. 위장에는 더 오랜 시간 음식이 머물며, 음식에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위장은 더 큰 타격을 받게 된다. 위암의 위험요인을 보자. 짠 음식, 탄 음식, 헬리코박터균(주로 입으로 감염) 등이다. 대장암의 위험요인으로는 내장의 운동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50세 이상인 경우, 붉은 육류 및 육가공품의 다량 섭취, 음주 등이 꼽힌다. 몸을 조금 더 움직인다면 소화기관은 위험요인들은 좀 더 빠르게 몸에서 내보낼 것이다. 일찍이 몸 쓰는 일을 중시했던 이들을 만나보자.

실경산수의 맥을 잇는 한국화가 박대성 화백(1945~)은 그의 살림집에 ‘불편당(不便堂)’이라는 이름을 붙여 놓고 산다. 이름만 그런 게 아니라 그 집에서는 모든 게 불편하다. 천장이 낮아 허리를 굽혀야 하고, 화장실도 부러 멀리 떨어뜨려 놓았다. 육체를 불편하게 해 더 건강하게, 더 깨어있는 정신으로 활동하려는 것이다.

미국 최고의 논설기자로 꼽히는 호러스 그릴리(1811~1872)는 노동의 즐거움을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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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끼는 인간이 다루어 온 것 가운데 가장 건강에 좋은 연장이다. 늘 앉아서 글을 써버릇하는 사람들이나 사무직 노동자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도끼질을 하면 굽은 어깨가 뒤로 넘어가면서 가슴이 펴지기 때문에 허파가 크게 열린다. 열다섯 살에서 쉰 살까지 남자들이 하루에 두 시간만 도끼를 휘두른다면 지구위에 소화불량이 사라지고 관절염도 거의 찾아보기 힘들게 될 것이다. 나는 도끼질이 서툴다. 하지만 도끼는 내 의사이자 기쁨이다.”(「월든」에서 인용)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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