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INSIGHT

사진

여행자들이 머무는 곳

여인숙은 집을 떠나 여행하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입니다. 유쾌한 사람, 음울한 사람, 부자, 가난뱅이, 성품도 제각각 별별 사람들이 찾아와서 하루나 이틀 혹은 며칠씩 머물다 떠나곤 합니다.
여인숙 주인은 아침마다 오늘은 어떤 손님이 찾아올까 하고 기다리겠지요. 이왕이면 ‘좋은 손님’이 오기를 바라지만 사람을 가려서 받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게다가 겉보기에 좋아 보인다고 해서 무조건 다 좋은 것도 아니니까요.
때때로 마음씨 좋고 너그러운 부자 손님들이 몰려와 장사가 잘될 때는 참 행복해집니다. 하지만 그들이 영원히 머무는 것은 아니지요. 마찬가지로 무개념의 진상손님이 찾아와 골치 아플 때도 주인은 그들이 곧 떠나갈 것을 알기에 그저 묵묵히 기다릴 뿐입니다.

감정은 나에게 찾아오는 손님

중세 페르시아의 시인 잘랄루딘 루미(1207~1273, 페르시아문학의 신비파를 대표하는 이란의 시인)는 우리 인생에도 여인숙의 손님처럼 찾아오는 것들이 있다고 말합니다. 바로 기쁨과 슬픔, 괴로움과 같은 감정들…….
요즘은 ‘감정노동’이라는 용어가 생겼을 만큼 사람의 감정이란 게 애물단지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우울하고 부정적인 기분이 들 때는 더욱 그렇지요.
그런데 우리의 감정은 매우 중요한 기능도 가지고 있습니다. 기쁨은 영혼의 진화를 향한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슬픔은 보내기 싫은 어떤 것을 떠나보내려 하고 있음을 말해주지요. 불쾌하고 부정적인 기분이 들 때는 그와 연관되거나 비슷한 어떤 경험이 내면에 억압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렸을 때 엄마를 잃거나 모성애의 부재로 막막한 두려움에 오랫동안 떨었던 기억이 있는 사람은, 성인이 되어서도 그 트라우마로 불안장애를 겪기 쉽습니다. 아직 내면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음을 알아주고 위로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감정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어떻게 나아가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이정표’의 역학을 하는 것이지, 우리를 괴롭히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랍니다. 우리의 마음에 잠깐씩 머물다 가는 손님처럼, 기뻤다 슬펐다 하며 너울거리는 시간의 파도처럼 감정은 그렇게 지나갈 뿐입니다.

고통은 나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신호

가끔은 무례하고 난폭한 손님들이 떼로 몰려와 여인숙을 무참하고 잔인하게 쓸어가 버릴 때도 있습니다. 안간힘을 쓰며 막아본들 속수무책인 순간이 있지요. 때로는 우리 삶에도 이와 같은 일들이 벌어집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상처, 고통스럽고 비참한 사연들 속에서 헤매다 돌아보니 어느새 주위에 아무도, 아무것도 남은 게 없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걸까요.
시인은 그러나 이 모든 것들에 대해 감사하라고 말합니다.
절망과 부끄러움, 후회, 그런 것들이 우리를 휘젓고 많은 것들을 앗아가 버릴 때 견디기 힘들더라도 가만히 들여다보세요. 더 좋은 것, 더 아름다운 것들로 채우기 위해 우리의 내면이 치유의 청소 중일 수도 있으니까요, 쓰리고 아프게 비워지는…….
행복에 겨울 때 우리는 마음이 평화와 기쁨으로 가득 차오르지만, 무너지고 고통스러울 때 비로소 비워내는 법, 변화하는 법을 절실히 배우게 됩니다. 그것이 우리들 삶에 고통이 존재하는 이유 아닐까요. 삶의 한가운데 다가오는 모든 것들, 행복과 기쁨은 물론 고통과 슬픔조차도 우리 인생 여정의 고마운 안내자들이라고 시인은 《여인숙》에서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 안내자들을 기꺼이 맞아들이고 견성(見性)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면 어떨까요. 그 안에 참된 마음의 평화가 있을 테니까요.
당신처럼 푸르른 5월의 봄입니다. 사진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