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의의 의술

주요 신경인지장애
치매의 실제 모습을 이야기하다

D씨의 아버지는 성실한 공무원이었는데, 8년 전에 치매진단을 받고 현재는 요양원에서 생활한다. 이제 아버지는 가족의 안부를 묻지도 않고 먹는 것에만 집착한다. D씨는 그런 아버지가 낯설다. 며칠 전 아버지가 “누구세요? 인물이 좋으시네” 하는 말을 듣고 D씨는 가슴이 푹 꺼지며 ‘아버지 기억에서 내가 사라졌다’는 생각에 슬픈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노인성 질환으로 부모가 돌아가실 때는 신체적으로 분리되기 때문에 이별을 인식하기 쉽다. 그러나 치매는 의식이 있으면서 기억이 없어지기 때문에 가족의 입장에서는 ‘관계의 상실’을 경험한다. 치매환자의 가족들은 그렇게 치매의 경과를 한 걸음씩 밟아가게 된다. 이것이 치매의 실제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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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전문분야 |
치매, 기억력장애, 노인우울증,
화병(노인센터 진료)

진료시간 |
노인센터(노인정신건강클리닉)
: (오전) 월,수 (오후) 월,수

학력 |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의학사
충남대학교 의과대학원 석사, 박사

경력 |
충남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DUKE MEDICAL CENTER 방문 교수
(前)국가치매관리위원
(現)세종특별자치시 광역치매센터장
(現)충남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장

학회활동 |
대한노인정신의학회 이사
대한생물치료정신의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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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알아보기

인지기능에 장애가 발생하면 ‘인지장애’라고 말한다.
치매는 인지장애에 포함된다. 최근에 치매를 ‘주요 신경인지장애(Major neurocognitive disorder)’라고 명명하고 있다.
치매란 인지기능의 문제가 심각해져서 스스로 일상생활을 수행하기 어려워진 상태를 말한다. 그 원인은 100여 가지 이상이 알려져 있지만, ‘알츠하이머병’이 가장 흔하다.
초기 단계에서는 주로 기억력 장애가 심각하며, 점차적으로 인지기능 전반에서 장애가 진행되고, 중기 단계에서는 정신행동의 문제가 동반되기 시작하며, 말기 단계에서는 대부분의 인지기능이 쇠퇴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상태로 진행한다.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세계적으로 처방되는 치매약제는 ‘아세틸콜린분해효소억제제’와 ‘메만틴’이다. 이들 약제들은 증상을 호전시키는 정도의 효과이며, 치매의 진행을 어느 정도 지연시키는 효과를 인정받고 있다.
치매의 근본원인이자 뇌세포의 퇴행성 변화를 유발하는 아밀로이드 단백질 또는 알파 시누클레인 단백질의 비정상적 생성, 제거, 또는 기능 차단에 작용하는 새로운 치매치료제 개발이 활발하지만 안타깝게도, 임상에서 안전하게 환자에게 처방하기 위해서는 그 결과를 조금 더 기다려야 하는 실정이다.
위의 내용은 ‘사람’을 빼놓고 읽어보면 다른 의학정보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다음의 사례들처럼 사람과 삶에 적용해보면 우리가 치매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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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와 만나는 순간

어려운 가정환경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이고 성실한 A씨(54세)는 회사에서 인정을 받는 과장이다. 어느 날, A씨의 부인은 “A 과장이 이상해졌다. 회의 중에 엉뚱한 말을 해서 싸우고, 문서작업도 제대로 하지 못 한다”는 회사 동료들의 이야기를 듣고 병원에 와서 남편의 검사를 요청하였다.
모든 검사를 마친 후에 의사는 A씨가 ‘전두측두엽 치매’라고 설명하였다. A씨의 부인은 이를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서울의 큰 병원에 갔지만, 결과는 같았다. 3년 후에 A씨와 부인이 다시 진료를 받으러 왔을 때 A씨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고, 부인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울먹였다.
A씨의 부인은 남편의 상태를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처음에는 의사의 실력을 의심하였고, 다른 의사의 의견을 확인한 후에도 막연히 좋아질 수 있다는 기대를 하면서 3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그 사이 A씨는 더욱 악화되었다.
치매진단을 받은 뒤 환자의 가족들은 이 사실을 쉽게 수용하지 못한다.
나이가 먹어서 그런 것을 의사가 오진했다고 하거나, 몇 번씩 물어보는 환자에게 화를 내거나 자신이 속을 썩여서 스트레스 때문에 치매가 발생했다고 자책하기도 한다.
그런 과정은 충격적 상황에 대한 사람의 자연스러운 감정변화의 과정이다. 의사들은 환자의 증상이나 검사결과를 객관적으로 설명하면서 가족들이 진단을 받아들일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이 필요하다.
그것이 첫 단계이다.

이상한 행동을 마주하는 순간

B 부인은 온순하고 따뜻한 사람이다. 젊어서부터 이웃을 위한 봉사활동을 해왔고, 나이가 들어서는 숲해설가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였다. 그러다가, 점차 일정을 기억하지 못 하거나 설명하는 도중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서 그만 두었다.
B 부인은 딸을 두 명 두었는데, 얼마 전부터 큰딸이 돈을 가지고 갔다고 욕을 하면서 “다시는 내 집에 오지마라”고 소리쳤다. 큰 딸은 엄마가 자신에게 욕을 하는 것에 깜짝 놀랐다. 큰딸은 B 부인을 이해시키기 위해 설명을 하려고 하였지만, 물건을 던지고 화를 내는 바람에 엄마 집에서 뛰쳐나와야 했다.
치매환자에서 보이는 행동 증상은 망상, 환각, 우울증, 불안, 공격성 등 다양하다. 치매를 앓는 동안 거의 90% 이상에서 한 가지 이상의 행동 증상을 보이는데, 증상에 따라 함께 사는 가족들이 곤란을 겪는 정도가 다르다.
망상 중에는 피해망상이 가장 흔히 보이는데, 망상의 대상이 되는 배우자, 자식들, 또는 요양보호사는 환자가 병 때문에 그런다는 것을 알면서도 부정적인 감정이 들곤 해서 힘들어한다. 약물치료로 일부 도움을 얻기도 하지만, 차즘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하기가 어려워진다. C씨는 시어머니가 치매를 앓고 있다. 시어머니의 상태는 며느리를 더 이상 알아보지 못하고 아들만 알아보는데, 아들을 꼬드기는 여자라고 미워한다. 그래도 C씨는 시어머니가 음식을 맛있게 드시고 잠을 잘 주무시는 것이 좋아서 항상 웃었다고 한다. 어느 날 시어머니가 “누구신데 나에게 이렇게 잘해줍니까?” 하는 말을 듣고 마음이 녹았다고 했다. C씨는 시어머니의 평소 인격을 다시 볼 수 있어서 눈물이 났다고 한다. 물론, C씨의 경험을 누구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치매환자와 함께 살기 위해서는, 환자의 건강했을 때의 모습이 없어지는 것을 안타까워하면 현재의 특별한 경험을 놓칠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자.

치매환자의 기억에서 내가 사라지는 순간

D씨는 회사의 중역이다. 그의 아버지는 성실한 공무원이었는데, 8년 전에 치매진단을 받고 현재는 요양원에 있다. 어머니가 아버지와 같이 살면서 우울증이 생기자 D씨는 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시기로 결심했다. 매주 한 번씩 아버지를 만나러 요양원에 가는데, 이제 아버지는 가족의 안부를 묻지도 않고 먹는 것에만 집착한다.
D씨는 그런 아버지가 낯설고, “나도 치매가 걸릴 위험이 높을 텐데, 과연 내 자식은 나에게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마음이 착잡하다. 며칠 전 아버지가 “누구세요? 인물이 좋으시네” 하는 말을 듣고 가슴이 푹 꺼지는 느낌과 함께 ‘아직 아버지와 이별할 준비가 안 되었는데, 아버지 기억에서 내가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어서 슬픈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노인성 질환으로 부모가 돌아가실 때는 신체적으로 분리되기 때문에 이별한다는 것을 인식하기 쉽다.
그러나 치매는 의식이 있으면서 기억이 없어지기 때문에 가족의 입장에서는 ‘관계의 상실’을 경험한다. 그러나 좀 더 자세히 보면, 치매환자는 자식의 이름을 불러주지는 않지만 친숙한 사람으로 대할 때 보이는 무의식적 행동(미소를 짓거나 손을 잡는 등)을 여전히 하고 있다. 그래서 가족들은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지속하게 된다.

지금까지의 몇 가지 이야기들은
실제 사례에서 착안하여 각색한 것이다.
치매의 초기부터 중기, 그리고 말기에
보이는 치매환자의 증상과 그에 대한
가족들의 경험을 소개하고자 하였다.
치매를 앓는 분들과 그분들과 함께 사는
가족들이 덤덤하게 치매의 경과를
한 걸음씩 밟아가는 모습도
보여주고자 하였다.
이것이 치매의 실제 모습이기 때문이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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