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듣는 이야기
4월호 테마인 ‘콩팥’의 의미를 짚어봅니다. | 글 편집실 | 감수 해부학교실 김수일 교수
짝을 이뤄 함께 만드는 기쁨
생명의 원천, 콩팥
기원전 ‘화목제’라는 제사에서 인간이 신에게 바친 제물은 다름 아닌 동물의 콩팥과 기름이었다. 동물의 고기나 머리가 아니라 콩팥을 제상에 올렸다는 건 뭘 의미할까. 짐작컨대, 콩팥은 수천 년 전에도 생명의 가장 중요한 기관 중 하나로 여겨졌음을 알 수 있다. 이 주먹만한 크기의 작은 기관이 어떻게 생명의 원천으로 꼽힐 수 있었는지, 그 콩팥 이야기를 들어보자.
콩팥이 하는 3가지 일
우리 몸 중 아래쪽 배의 등 쪽에 쌍으로 자리 잡은 콩팥(신장)은 이름그대로 콩 모양처럼 보인다. 콩팥 한쪽은 어른 주먹크기(약 10~12cm)에 야구공 정도의 무게(120~160g)를 갖고 있다. 내장기관 중 같은 기능을 하면서 짝을 이루는 기관은 거의 콩팥이 유일하다. 그래서 한 개를 떼어 다른 사람에게 주어도 남은 하나가 기능을 대신할 수 있다. 콩팥이 하는 일은 크게 3가지로 나뉜다. 가장 대표적으로 몸의 필터 기능을 들 수 있다. 콩팥은 음식을 먹고 소화하는 과정에서 생긴 불필요한 노폐물을 걸러 소변으로 배출한다.

다음은 우리 몸을 늘 비슷한 상태로 유지시키려는 항상성 유지 기능이다. 몸속의 물을 잘 다루는 콩팥은 항상성 유지를 위해서도 주로 물을 이용한다. 수분대사를 조절해 세포외액량(세포 밖에 존재하는 수분)을 조절하거나, 소변의 배뇨랑을 조절하여 나트륨(소듐)과 칼륨의 농도를 일정하게 유지시킨다. 이 조그마한 기관이 인체의 50~60%를 차지하는 수분을 관장하는 것이다.
콩팥은 뇌하수체나 갑상선처럼 호르몬을 직접 생산하고 활성화시키는 내분비 기능도 한다. 콩팥이 만들어내는 호르몬 중 레닌은 혈압과, 혈액 중 혈장량을 유지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또 일부 생성되는 프로스타글라딘은 콩팥 혈관을 확장시켜 혈류량을 높이는데, 나트륨과 수분 배설, 레닌 분비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콩팥이 하는 일을 살펴보니, 그 무게가 체중의 약 0.4%에 지나지 않음에도, 심장에서 내보내는 피의 20~25%가 콩팥으로 가는 것도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지구의 콩팥, 습지
이런 콩팥이 고장 난다면 어떻게 될까. 가장 먼저 필터로 걸러지지 않은 혈액 속 노폐물이 몸이 쌓일 것이다. 나트륨과 수분 배출이 원활치 않아 몸은 붓고, 혈압은 높아진다. 더 이상 몸의 산도를 약알칼리성으로 유지하지 못하면서 산성화된 몸은 뼈가 약해지고, 혈액 내 칼륨 농도가 높아져 심장에 무리가 온다. 또한 피를 만드는 호르몬이 분비되지 않아 빈혈이 생기고 여러 장기의 세포 활동을 망가뜨리게 된다. 당장 목숨을 위협하지는 않지만 서서히 생명력을 잃어가는 것이다.
지구에도 콩팥처럼 없어선 안 될 중요한 지형이 있다. 바로 ‘지구의 콩팥’으로도 불리는 습지다. 습지는 바다·강·호수·냇가 주변의 늪, 갯벌 등 물을 머금은 모든 땅을 의미한다. 육지와 물을 이어주는 중간 단계의 생태적 특성으로 수천수만 종의 생물이 서식한다.

습지는 마치 콩팥처럼 물(혈액)로 흘러든 오염원을 분해하고 정화하는 역할을 한다. 습지의 물풀과 미생물은 물속 여러 영양물질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물을 깨끗하게 걸러준다. 또한 습지는 몸속의 물을 관장하는 콩팥과도 흡사하게 지구의 수분을 조절한다. 홍수가 나면 물의 흐름을 늦추어 급격이 불어나는 걸 막아주고, 갯벌의 게 구멍과 조개 구멍도 물을 흡수해 큰 자연재해의 피해를 줄여준다. 이외에도 어업 활동의 90%가 습지와 관련해 이뤄질 만큼 습지의 수산자원은 무척이나 풍부한데, 그 경제적 가치는 농경지의 100배, 숲의 10배에 달한다고 한다.
지구 전체 면적의 약 6% 밖에는 안 되는 습지의 역할은 콩팥과도 쏙 빼닮았다. 그런 습지가 사라졌을 때 지구는, 콩팥이 고장난 몸과도 같을 것이다. 각종 개발과 매립으로 매년 사라져 가는 습지에서 지구의 생명, 그리고 우리의 생명을 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