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08

동행2_정년퇴임 기념 인터뷰

글+사진|편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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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봉사정신과 인내심을 가지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영상의학과 조준식 교수

“봄에 나서 여름에 자라고 가을에 거두고 겨울에 저장하는 순환을 뜻하는 ‘원형이정(元亨利貞)’이란 단어가 있습니다. 모든 일은 순리를 따른다는 의미이지요.”지난 31년 동안 충남대학교 의과대학 영상의학과교실 주임교수, 충남대학교병원 영상의학과장·진료처장 등을 역임하며 우리나라 영상의학 발전을 이끌어 온 조준식 교수는 퇴임을 앞둔 소감을 ‘원형이정(元亨利貞)’이란 단어로 대신했다. 조준식 교수가 헌신해온 영상의학 분야는 CT와 MRI 등 진단장비가 혁신적으로 발전하며 현대 의학의 필수 진단요소로 자리 잡았다. 의사로서의 책임과 소명이 먼저임을 당부하는 조준식 교수를 병원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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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으로 영상의학과를 선택하신 계기가 있나요?

영상의학과전문의는 X레이, CT, MRI, 초음파 등 모든 영상검사의 질을 유지하고 정확하게 판독해 환자의 진료와 치료 방침을 정하는데 기여합니다. 필요에 따라서는 타과에서 하기 힘든 조직검사나 중재적 치료도 수행하고요. 제가 의대에 다니던 1970~1975년 대전만 해도 환자의 진단을 주로 청진이나 타진에 의존했습니다. 당시 유일하게 몸을 볼 수 있는 장치였던 X선을 이용한 방사선진단에 매력을 느꼈습니다. 또 과학이 발전할수록 비전이 있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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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임 후 지금까지 영상의학과의 변화상을 회고해주세요.

과학기술과 장비의 발전에 따라 방사선과가 진단방사선과로, 2004년에는 영상의학과로 과의 명칭이 바뀌었습니다. 1980년 이후 CT와 MRI, 초음파 등이 급속히 개발되고 보편화되었죠. 1990년대부터는 영상장비를 이용한 진단이 필수가 됐습니다. 특히 2000년대 컴퓨터 기술이 발전하며 우리 몸을 10초 내에 스캔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힘든 시기 진료처장을 역임하셨는데요. 병원 발전과 화합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하셨나요?

1999년 10월 진료처장으로 임명됐는데 당시는 시대적으로 격동기였습니다. 2000년 4월 처음으로 우리병원 노조가 파업을 단행했고, 파업의 충격에서 벗어날 즈음 정부의 의약분업 추진으로 의사들의 총궐기와 총파업이 있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병원 발전을 위해 모아 온 재원으로 위기를 겨우 모면 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故 노홍규 원장님께서 지혜롭게 어려움을 타개하셨습니다. 부족하지만 저도 직원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병원의 화합과 병원활성화를 위해 노력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의사로서 가장 행복했던 기억은 무엇입니까?

행복이라는 표현보다는 보람이 맞을 것 같습니다. 교수로서 진료와 교육, 연구 세 가지 모두 충실해야 하는데 초기에는 진료와 교육에만 중점을 두어 연구가 미진했습니다. 마침 1989년 미국 텍사스 의과대학 MD Anderson 암센터에서 1년간 연수하며 연구에 대한 동기부여가 많이 됐습니다. 이후 1991년 12월 미국 시카고에서 열리는 북미방사선학회(RSNA)에서 논문을 발표하며 보람과 기쁨을 느꼈습니다.

지난 5월 대한복부영상의학회 정기학술대회에서도 청석공로상을 수상하셨죠.

의학이 발달하려면 의과대학교수들이 진료하고 연구한 경험을 바탕으로 좋은 논문을 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논문을 통해 새로운 지식이 공유되고 환자에게도 도움이 돼야하고요. 저 역시 부족하지만 위암과 간암 관련 연구를 하며 학회에 발표해왔습니다. 또 2004~2005년에 대한복부영상의학회의회장으로 봉사하며 학회의 발전에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충남대학교병원을 이끌어갈 젊은 후배들을 위해 당부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1972년에 개원한 충남대학교병원은 44년의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다른 병원보다 앞서 가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과 변화를 추구해야만 합니다. 의사라는 직업은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직업은 아닙니다. 의사가 됐다는 것은 남을 위해 봉사를 해야 한다는 의미가 큽니다. 자기 노력과 인내심을 바탕으로 환자를 열심히 진료하고 이를 바탕으로 깊이 있는 연구를 수행해야 합니다. 특히 연구에 대한 더욱 더 큰 열정이 필요합니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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