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의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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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어떤 실체나 현상에 대한 리얼한 박진감을 보여준다면, 일러스트는 우리에게 시각적 판타지를 전해준다. 어떤 의미를 전달하거나 암시한다는 측면에서 일러스트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벽화나 프랑스 라스코 동굴벽화와 같은 원시시대의 벽화를 바라보며 우리의 마음은 끝없는 상상의 구석기시대를 달린다. 때로는 신비롭게,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부드럽게.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은 이탈리아 중북부 고대도시 볼로냐에서 매년 개최되는 국제어린이도서전의 핵심 프로그램으로 1967년부터 시작하여 2019년 53회째를 맞은 오랜 역사와 권위를 가진 전시다. 세계 최고의 심사위원을 통해 선정된 300여 점의 작품들은 감성적인 색감과 섬세한 스케치, 위트 넘치는 아이디어가 일품이다. 어린이에겐 초롱한 호기심을, 어른에겐 숨겨진 동심을 일깨워주는 세계 각국의 그림숲길을 조금씩 찬찬히 산책할 시간이다.

전 시 명|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2019

전시장소|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

전시기간|2020. 2. 6. ~ 4. 23.

사진제공|씨씨오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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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데스니츠카야(Anna Desnitskaya, 러시아)의 시베리아에서 온 지나

다섯 번째 전시섹션인 ‘삶(Life)’에서는 우리 인생과 우리 곁에 숨은 이야기에 관한 작품을 보여준다. 흔한 일생상활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소소한 내용들로 채워진 작품이지만, 작가 모국의 역사와 문화적 색채가 느껴지는 듯하다. 우리는 이러한 공감과 다름 사이에서 문화적 다양성을 깨닫게 되고, 내가 몸담은 나라와 내가 살아온 삶을 되돌아보는 기회도 갖는다.
<시베리아에서 온 지나>는 1970년 겨울, 가족과 함께 소련에서 뉴욕으로 이주한 강아지 지나의 이런저런 이야기를 서정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작가 안나 데스니츠카야는 세밀한 디테일로 아름답게 묘사한 일러스트를 통해 우리에게 조금 더 친근하게 러시아의 사회적·정치적 변화에 대한 역사를 느끼게 해준다.
이민자 사회인 뉴욕이라는 다양성의 도가니 안에서 1970년대 철의 장막이라 불리던 소련이라는 차갑고 무거운 이미지가 오버랩되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민자 가족의 따뜻한 저녁식사 풍경이 더 눈에 띄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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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베이직(Jan Bajtlik, 폴란드)의 아리아드네의 실, 신화의 미로

이번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에서는 총 5개의 섹션으로 나눠 일러스트 수상작들을 전시한다.
첫 번째 섹션인 ‘옛날 옛날에(Once upon a time)’에서는 오랜 세월을 걸쳐 사람들의 입을 통해 전해지면서 서정적이면서도 환상적인 이야기를 갖춘 신화와 전설을 표현한 동화 일러스트를 보여준다.
이중 눈길을 끄는 것은 신비로운 길과 이야기들로 가득한 ‘미로찾기’를 연상케 하는 폴란드 바르샤바 출신의 작가 얀 베이직의 작품이다. 여러 유명 브랜드와 협업을 통해 자신만의 디자인 세계를 선보여온 그는 작품 <아리아드네의 실, 신화의 미로>를 통해 고대 그리스의 신화와 문화를 재해석했다.
신화와 미로를 결합하여 일러스트로 표현한 이 작품 속에서는 그리스신화가 들려주는 신과 영웅들의 이야기가 곳곳에서 펼쳐진다. 얀 베이직이 창조한 구불구불한 미로를 눈길로 따라가자니 어릴 적 연필로 그려가며 탈출구를 알아맞히던 미로찾기 게임이 떠오르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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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리나 셀라스(Caolina Celas, 포르투갈)의 지평선

“잊고 지내지만, 어디에나 있습니다. 아주 멀어 보이지만,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고, 어쩌면 내 마음속에도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지평선이란 무엇인가요?” 포르투갈의 일러스트 작가 캐롤리나 셀라스가 2017년에 발표한 생애 첫 그림책 《지평선》에 나오는 글이다. 2018년과 2019년에 걸쳐 세계 여러 곳에서 상을 받는 등 유명세를 치렀다.
색채가 사랑스러우면서도 시원하며, 구도는 아름다우면서도 독특하고, 게다가 철학적 사유도 건네는 이 작품은 그녀만의 시적 세계관을 잘 표현했다. 우리는 잊고 지내기도 하지만, 지평선은 어디에나 있다. 빌딩숲 사이에, 복잡한 인파 속에, 고요한 내방 안에도 존재한다. 그러나 어떤 날은 멀리 떨어져 있고, 어떨 때는 너무 가까이에 있다.
우리 내면에도 지평선이 있다. 인생의 지평선이 눈앞 가까이에 있다면 답답하다. 내 세계가 좁아졌거나 벽에 부딪쳤을 때다. 그럴 때는 시야를 크게 가져본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으면 내 인생의 나침반이 방향감각을 상실한 경우다. 지평선을 잃지 않으면서도 적당하게 거리를 두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이 작품은 우리에게 속삭인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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