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의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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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화재 현장에서 흑인 소방관이 백인 아이를 구하는 사진 속 장면은 인종갈등으로 절망에 빠진 미국사회에 희망의 불씨를 지피는 계기가 됐다. 이처럼 퓰리처상 수상작들은 우리가 놓치고 있던 가치를 다시금 되새겨 준다. 이미 세 차례의 전시로 인기를 모았던 퓰리처상 사진전이 6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았다. 1942년부터 2020년까지의 수상작 134점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는 한국인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김경훈 로이터통신 기자의 작품을 포함하고 있어 더 의미 있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의 사진을 통해 그들의 뜻을 전달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김 기자의 말처럼 찰나의 기록을 감상하며 미처 듣지 못했던 외침에 귀 기울여 보자.

전 시 명|퓰리처상사진전

사진제공|사진제공-퓰리처상사진전

전시기간|2020.07.01 ~ 2020.10.18

전시장소|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

피부색은 중요하지 않다

<생명을 불어넣다(Giving Life), 1989년 Spot News 수상작>
불타는 아파트가 무너져 내린다. 여기저기 들리는 비명소리. 끔찍한 화재 현장에서 한 흑인 소방관이 백인 아이를 안고 뛰어나오고 있다. 뜨거운 화염이 그대로 남아 있는 듯 몸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나고 거친 숨을 몰아쉬며 헬멧을 뒤로 젖힌 소방관은 다급히 아이에게 인공호흡을 시도한다. 이때 아마추어 사진가 론 올슈웽거는 셔터를 눌렀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미국 내 인종갈등이 심화된 요즘, 이 사진은 많은 의미를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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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루탄 돌려주기

<퍼거슨 시위(Ferguson Protest), 2015년 Breaking News 수상작>
에드워드 크로포드는 항의 집회 참석을 위해 퍼거슨으로 향했다. 세인트 루이스 경찰이 비무장 십대 흑인 소년 마이클 브라운을 사살한 사건에 대해 시민들이 분노하며 모이고 있었다. 경찰이 시위대에게 최루탄을 발사했다. 크로포드의 목적은 하나였다. 최루탄 돌려주기. 시위를 구경하던 어린 아이들 근처에 최루탄이 떨어졌고 그는 달려가 이를 집어 들고 경찰에게 던졌다. 사진 기자 로버트 코헨은 이 순간 셔터를 눌렀다. 국민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국가에 대해 크로포드가 주는 메시지는 명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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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은 세상을 바꿀 수 없다

<베트남-전쟁의 테러(Vietnam-Terror of War), Huynh Cong “Nick” Ut, 1973년 수상작>
네이팜탄에 모든 것이 타버려 옷을 버리고 뛰어야만 했던 여자 아이. 전쟁이 무엇인지 조차 생경했던 어린 소녀가 폭력에 말려든 모습이 세상을 움직였다. 전쟁 중엔 어느 곳도 안전할 수 없다는 사실이 입증되자 ‘반전 운동’이 전개됐고, 이는 네이팜탄 금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사진을 찍은 닉 우트는 1973년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사진 속 소녀인 킴 푹은 전신화상을 치료하기 위해 17차례나 수술을 받으며 베트남전의 참상을 고발하는 아이콘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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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 INTERVIEW

2019년 한국인 최초 퓰리처상 사진부문 수상

김경훈 로이터통신 기자

수상작을 찍게 된 계기는?

2018년에 중남미 난민들이 폭력과 빈곤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를 시도했던 카라반(Caravan) 사태가 발생했다. 당시 이들과 3주 동안 수천 킬로미터를 함께 하며 밀착 취재했다. 수상작은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 지대인 티후아나라는 곳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당시 평화 시위 중이던 중남미 카라반 난민들이 국경 장벽 앞으로 모여들었고 이를 해산시키기 위해 미국 국경 수비대는 최루탄을 발사했다. 당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남미 카라반들이 갱들이고 위험한 사람들이라 규정했지만, 사진에서 보다시피 카라반의 실체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해당 사진은 미국인들이 ‘중남미 카라반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과연 아이들에게까지 최루탄을 쏴야 했을까’는 자성의 목소리를 내는 계기가 됐다.

취재 이후 사진 속 이민자들은 어떻게 됐는가?

사진 속의 아이들은 당시 4살짜리 쌍둥이였고 아이들의 엄마인 마리아 메자는 혼자서 5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미국으로 향하고 있었다. 마리아 메자는 “미국으로 가서 허드레 일을 하더라도 아이들에게 보다 나은 미래와 기회를 주고 싶어 카라반 행렬에 참가하게 됐다”고 말했다. 다시 만났을 때 아이들은 건강한 모습이었고, 마리아의 가족도 사진으로 주목 받아 미국 인권 단체들의 도움으로 망명이 허가돼 미국 워싱턴에 정착해 살고 있다.

보도 사진이 주는 의미는?

사진기자는 사진으로 역사를 기록하는 비주얼 히스토리안(Visual Historian)이고 사진 혹은 영상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비주얼 스토리텔러(Visual Story Teller)라고 생각한다. 지금 이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사진에 담아서 공정하게 전달하는 것이 내 일의 본질이다. 우리 사회에서 한 장의 사진은 커다란 힘을 가지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의 뜻이 내 사진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사진을 보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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