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07

나눔의 힘1

자료제공| 발전후원회 운영지원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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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기부문화,
돈에 길을 내다 뜻에 길을 만들다

지금은 떠나시고 없지만 평생 나와 어머니 사이를 말없이 연결시켜주던 장면이 있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 넉넉하지도 않았던 어머니가 떠돌이 걸인 아주머니를 집에 모셔다가 목욕을 시키고, 저녁을 대접하고 부엌에 딸린 작은 방에서 재워드리던 모습을 목격했다. 스위스의 교육학자 페스탈로치는 가장 좋은 자녀교육은 ‘선한 일을 하다가 자녀에게 들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좋은 기부는 최상의 자녀교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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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우 ㈜도움과나눔 대표이사
비영리 섹터를 위한 모금컨설팅 회사인 도움과나눔의 CEO로서 한국의 자선단체, 교육기관, 의료기관 등의 대형 모금 전략 컨설팅, 자선멘토링 및 강의 등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운영위원, (사)사교육걱정없는세상 이사직, 국제사랑영화제 감사 등을 맡고 있다.

기부자 스스로를 ‘치유’하는 기부

911사태 이후 미국에서 평화롭기로 유명한 펜실베니아 아미쉬공동체 안에 있던 초등학교에 괴한이 난입해 여러 명의 아이를 총으로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었다. 911 사건에 버금가는 충격을 미국인들에게 주었다. 즉각 생방송으로 전국에 중계가 되었고 전국적으로 선물과 도움의 손길이 답지했다. 풍요한 아미쉬공동체의 지도자들에게는 사실 물질적 도움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오랜 토론 결과 ‘저희는 여러분들의 선물을 감사히 받기로 했습니다. 우리가 선물을 받는 것 보다 여러분들이 선물을 주시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라고 기자회견을 했다. CNN으로 중계되는 비극을 바라보던 또래의 꼬마들은 자신이 잠드는 침대에서 가장 귀중한 테디베어를 그 아미쉬공동체에 선물로 보내지 않고는 슬픔을 삭일 수 없었다. 기부는 그 자체가 기부자에게 치유가 되기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할 선물을 감추고 있는 사람보다 행복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기부는 그 기쁨이 가족의 울타리를 넘어서 확산되는 한 길이다. 기부는 이렇듯 삶을 풍요하게 한다. 수천년 동안 기부문화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말은 아마 예수가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일 것이다. 한 인간의 존엄성을 중시하는 문화적인 배경에서 남을 도울 때는 권위가 있는 오른 손으로 정중하게 해야 했으며, 일어서서 예를 갖추어 도와야 했다. 기부를 통해서 우리는 인간의 귀중함으로 배우고 확산한다. 유대인의 나눔의 관습에서는 거지조차 소득의 5%는 남을 위해서 써야한다고 한다. 내가 인간으로서 반듯하게 변해가는 기부는 빈부를 막론하고 모두의 것이다.

한 사람을 돕는 ‘소매자선’ vs 인프라를 돕는 ‘도매자선’

기부는 때로 사회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는 길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의학과 의료서비스의 발달에는 기부문화가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이제는 전세계적으로 소아마비환자를 발견할 수 없다. 이것이 로타리클럽의 모금캠페인 덕분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난 수 십 년 동안 국제로타리클럽은 소아마비박멸(Polio Eradication) 캠페인을 해왔다. 이제 아주 부분적인 지역에서만 소아마비가 남아있다.
록펠러의 조언자는 록펠러에게 ‘환자 한 사람 한 사람을 돕는 방식의 소매자선(retail charity)를 뛰어넘어 근본적인 의료 인프라를 돕는 일을 하라는 의미에서 도매자선(wholesale charity)을 하라’는 것을 권고했다. 그런 기부의 문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한국의 세브란스병원은 록펠러와 동시대의 같은 지역(클리블랜드)에서 부를 축적한 세브란스라는 기부자의 도움으로 설립된 병원이다. 세브란스 뿐만 아니라 한국의 많은 의료 인프라에는 선한 기부의 영향이 깊이 있다.
지금도 세계적으로 의료에 대한 기부문화는 급성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치료와 연구의 진전을 넘어서 새로운 산업에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런 흐름은 실리콘벨리와 MIT, 하버드가 중심이 된 보스톤에서는 특히 그렇다. 대학과 병원들은 저마다 세계적 건강문제의 해결책을 모색하는 모금캠페인들을 내놓고 있고, 빌게이츠와 워렌버핏 등의 자선가들은 호응하고 있다.

충남대학교병원에 대한 신뢰, 달라진 기부문화

과학과 벤처의 중심인 대전에 위치한 충남대학교병원에서 오랫동안 노력해 온 기부문화가 이제 꽃 피기 시작하는 것은 기쁘고 기쁜 일이다. 대전지역 재계의 큰 어른인 박종윤 ㈜세창·한국드라이베아링 회장님이 최근 고액을 기부하시고 지속적인 도움을 주기로 약속하시며 ‘환자지원과 공공의료의 발전’에 잘 써줄 것을 당부하는 것은 사회적 투자마인드를 가진 분들의 파트너로서 충남대학교병원이 신뢰를 받기 시작했다는 의미이다. 앞으로 충남대학교병원을 통해서 사회의 문제해결을 위해서 투자할 분들이 줄을 이을 것으로 기대한다.
충남대학교병원의 기부문화 발전이 더 기분 좋은 것은 과정과 결과가 다 좋기 때문이다. 문전에서 우왕좌왕하다가 들어간 골도 기쁘지만 미드필드에서부터 아름다운 전개를 통해서 골을 넣는 모습을 볼 때는 더 상쾌하다. 모금전문가의 관점에서 충남대학교병원의 변화가 표면의 변화가 아니라 병원과 구성원들의 분위기 등 근본적인 태도의 변화에서 열매가 맺히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본인의 건강 때문에 시작한 태극권이라는 중국무술의 원리 중에서 ‘부동수(不動手)’라는 개념을 알고 무릎을 쳤다. ‘손은 움직이지 않는다’니 무슨 뜻인가? 손이 자기 움직임을 이끄는 것이 아니고 몸 중심(단전)의 움직임을 따라갈 뿐이다. 사실 모든 좋은 변화는 중심적인 태도 변화에서 생겨난다.
충남대학교병원의 기부문화는 환자진료, 의학연구, 공공의료를 통해서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확산하겠다는 ‘이미 시작된 중심적인 태도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기에 큰 박수를 보낸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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