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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사랑일세, 스토너 군.
자네는 사랑에 빠졌어. 아주 간단한 이유지.

존 윌리암스의 소설《스토너(1965)》중에서

담담히 인내하고 받아들이는

존 윌리암스의 소설 《스토너(1965)》에는 윌리엄 스토너라는 남자 주인공이 나옵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내내 아버지를 도와 땅을 경작하다가 미주리대학교 농과대학에 입학합니다. 새로운 농업기술을 배우라는 아버지의 권유에 의해서지요. 그러나 그는 의도하지 않은 전혀 뜻밖의 만남에 홀리게 됩니다. 그를 새로운 세상으로 이끌지요. 농업기술에 비해 어쩌면 현실에선 무용하기 짝이 없는 ‘문학’과의 만남이 그것입니다. 어느날 영문학개론 수업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접한 후 문학을 사랑하게 된 스토너는 고향에 돌아가 농부로 사는 대신 영문학도의 길을 택합니다.
셰익스피어와의 만남을 통해 스토너는 살아숨쉬는 삶에 어떤 경이로움이 숨겨져 있음을 어렴풋이 깨닫게 됩니다. 그것을 말로는 좀체 표현할 수 없기에 그는 아직도 자신을 모르겠냐는 슬론 교수의 질문에 대답을 못하지요. 그럼에도 그 찰나의 뜨거운 떨림을 체험했기에 진로를 바꾸게 됩니다. 슬론 교수는 유쾌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지요.
“이건 사랑일세, 스토너 군. 자네는 사랑에 빠졌어. 아주 간단한 이유지.”
문학과 사랑에 빠진 스토너는 끝내 영문학 교수의 길을 갑니다. 그렇다면 그 뒤로 스토너의 인생은 성공적이었을까요? 세속적인 기준으로 볼 때, 그는 성공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미주리대학교의 종신교수가 되어 은퇴를 했습니다.
하지만 한 꺼풀 깊이 들어가 보면 행복과는 거리가 있는 삶이었습니다. 평생 동안 아내에게 사랑받지 못했고, 부부관계는 얼음장보다 더 차가왔으며, 학교에서도 그를 모함하고 시기하는 사람들로 인해 은퇴할 때까지 괴롭힘을 당합니다. 때늦은 인연을 만나 사랑을 불태우지만, 그것도 허망하게 끝나고 말지요. 그가 마음 깊이 사랑했던 딸은 알코올중독에 빠져듭니다. 스토너 자신은 말년에 암투병을 하지요. 그는 가족에게서도, 직장에서도, 사랑에서도 구원 받지 못합니다. 삶은 냉정하고 잔인하게 그를 파괴하려 달려들곤 합니다. 그러나 그런 모든 순간을 스토너는 농부의 아들답게 담담히 인내하며 받아들입니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어쨌든 삶이란 강은 흐르니까요.

우리 모두의 초라하지만 위대한 초상

스토너는 고독하게 각자의 길을 가는 우리 시대 보통사람들의 모습과 무척 닮았습니다. 작가가 그려내는 스토너의 삶은 쓸쓸했지만, 우리는 누구나 철저히 혼자라는 인생의 진리를, 사는 모습은 달라도 우리는 누구나 스토너임을, 평범한 한 사람의 일생에 인생의 모든 빛나고 특별한 순간이 담겨 있음을 통찰하고 공감하게 해줍니다. 인생에서 대부분의 만남은 완전히 행복하지도, 완전히 불행하지도 않은 어떤 곳으로 삶을 이끕니다. 시계추처럼 그 두 곳을 왔다 갔다 하다가 언젠가 멈추는 게 인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말년의 스토너는 어쩔 수 없이 떠나보낸 사랑을 아프게 회고합니다.
“이제 자신은 예순 살이 다 되었으므로 그런 열정이나 사랑의 힘을 초월해야 마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초월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앞으로도 영원히 초월하지 못할 것이다.”
스토너의 깨달음처럼 우리는 너무나 인간적인 그 어떤 것도 초월하지 못합니다. 가슴 아픈 사랑도, 이루지 못한 꿈도, 돌이킬 수 없는 실수와 잘못도. 그러나 그런 초라함을 인정하고 운명을 사랑하는 순간, 우리의 삶은 역설적이게도 한층 성숙해지고 위대해집니다. 스토너는 삶의 마지막까지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해 노력했던 것입니다. 작가 존 윌리암스가 창조한 스토너야말로 삶의 부조리함을 느끼면서도 하루하루 고군분투하며 묵묵히 살아가는 당신과 나 ― 우리 모두의 초라하지만 위대한 초상입니다. 스토너는 지금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을지도요.
“당신의 삶과 사랑에 최선을 다하라. 그런 인생에 성공이나 실패는 그저 하찮은 것에 불과하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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